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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여기서는, 교회 전통과 맞닿은 번역 및 어휘 선택의 문제를 다룬다. === 신학적 번역 (Theological Translation) === 단순히 원문의 문자적 의미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정립된 해석 전통이나 교의적 신념을 반영하여 번역하는 방식. 예시: 이사야 7:14에서 "알마"를 *처녀(παρθένος)*로 번역한 70인역의 선택 === 정경적 번역 (Canonical Translation) === 성경이 정경(can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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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교회 전통과 맞닿은 번역 및 어휘 선택의 문제를 다룬다. | 여기서는, 교회 전통과 맞닿은 성경의 번역 및 어휘 선택의 문제를 다룬다. | ||
=== 신학적 번역 (Theological Translation) === | === 신학적 번역 (Theological Translation) === | ||
단순히 원문의 문자적 의미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정립된 해석 전통이나 교의적 신념을 반영하여 번역하는 방식. | 단순히 원문의 문자적 의미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정립된 해석 전통이나 교의적 신념을 반영하여 번역하는 방식. | ||
예시: 이사야 7:14에서 "알마"를 * | 예시: | ||
* 이사야 7:14에서 "히, almah알마;젊은 여자"를 "헬, 파르테노스parthenos;처녀"로 번역한 70인역의 선택. 70인역 번역자들이 이를 번역할 때, 당시 유대 전통 속에서 '알마'를 실제로 '처녀'로 해석했을 가능성도 있고, 혹은 메시아적 의미를 더하기 위해 '파르테노스'를 의도적으로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는데 이 번역은 훗날 신약성경 마태복음 1:23에서 '''예수 탄생의 예언'''으로 직접 인용되며, 기독교 신학에서 중요한 근거로 자리 잡는다. | |||
* 시편 22:16 (히브리어) / 21:17 (70인역); “그들이 내 손과 발을 뚫었다”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 (MT): "כָּאֲרִי יָדַי וְרַגְלָי-사자처럼 내 손과 발을 (둘러쌌다)" – (히: כארי = “사자처럼”) 70인역 (및 언셜 사본들): "ὤρυξαν χεῖράς μου καὶ πόδας-그들이 내 손과 발을 찔렀다/뚫었다" 70인역과 언셜 사본은 히브리어의 ‘כארי(사자처럼)’를 아예 다른 단어인 ‘카루’(뚫다)로 읽고 번역함. 이는 십자가형의 '''메시아적 예표'''로 해석하기 위한 선택이며, 기독론적 해석 전통에 맞춘 의도적 번역임. (개역한글/개정/새한글성경 등 한국어 번역본은 칠십인역 자체를 주된 번역 원문으로 삼아 번역한 것은 아니지만, 시편 22편 16절에서는 칠십인역과 유사한 의미(손발을 상하게 하는 행위)를 택하여 번역했으며, 이는 히브리어 원문의 다양한 해석 가능성이나 고대 번역 전통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 | |||
* 이사야 53장 – 고난받는 종의 노래; 이사야 53:10 (히브리어): "יִשָּׂם אָשָׁם נַפְשׁוֹ-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삼았을 때…" 70인역 (및 언셜 사본들): "εἰ δοῦτε περὶ ἁμαρτίας-너희가 죄를 위한 희생제로 바친다면…" 원문은 제3자 시점(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인데 반해, 70인역은 예배자가 능동적으로 제사를 바치는 형태로 바꿈. 이는 '''그리스도의 희생이 제의적으로 참여 가능한 속죄제'''라는 교회 신학의 강조가 반영된 구조임(이는 예수의 수동적 희생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희생에 대해 신자가 응답하고, 그것에 참여함으로써 구원의 은혜에 동참할 수 있다-신약의 성찬(Eucharist)). [2] | |||
* 이밖에도, 칠십인역(LXX)의 메시아적 해석 등에 대해서 알아보려면 [[칠십인역]] 위키문서를 참고할 것. | |||
=== 정경적 번역 (Canonical Translation) === | === 정경적 번역 (Canonical Translation) === | ||
성경이 정경(canon)으로 사용되는 문맥, 즉 교회가 그것을 공적 신앙 고백으로 사용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여 번역하는 방식으로, 성경 본문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이해되어왔는가를 반영한다. 이는 전례, 설교, 신조와의 일관성을 우선한다. | 성경이 정경(canon)으로 사용되는 문맥, 즉 교회가 그것을 공적 신앙 고백으로 사용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여 번역하는 방식으로, 성경 본문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이해되어왔는가를 반영한다. 이는 전례, 설교, 신조와의 일관성을 우선한다. | ||
용례: 시편의 | 용례: 시편의 셀라selah를 Διάψαλμα(디아프살마) – ‘중간 음악 연주’ 또는 ‘간주’라는 뜻)로 바꾸거나, 예배용 시편에서 구절 구조를 재배치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 | ||
=== 교의적 해석 번역 (Dogmatic Translation / Doctrinal Translation) === | === 교의적 해석 번역 (Dogmatic Translation / Doctrinal Translation) === | ||
특정 교의(dogma)-예를 들면 삼위일체, 성육신, 동정녀 탄생 등-을 지지하거나 정통 해석과 충돌하지 않도록 조정된 번역. | 특정 교의(dogma)-예를 들면 삼위일체, 성육신, 동정녀 탄생 등-을 지지하거나 정통 해석과 충돌하지 않도록 조정된 번역. | ||
예시: 요한복음 1: | 예시: 요한복음 1:1 - 신성과 관사 문제; “καὶ Θεὸς ἦν ὁ Λόγος-그리고 하나님은 그 말씀(Logos)이셨다”에서 ‘하나님’에 관사를 넣지 않은 선택은, 성자의 신성을 교의적으로 명확히 하려는 번역적 판단일 수 있음. (헬라어 문법상 관사가 없으면 '신적인'이라는 성격을 가리키기도 하나, 정통 '''삼위일체 신학'''에 맞춰 해석. 사소한 문법적 가능성보다, 성자 예수의 ‘완전한 신성’을 고백하는 구조를 유지) | ||
창세기 1:2 – 성령에 대한 표현; "וְרוּחַ אֱלֹהִים מְרַחֶפֶת עַל־פְּנֵי הַמָּיִם-하나님의 영(ruach루아흐)이 물 위에 운행하셨다” ▷ 70인역 및 언셜 코덱스 "πνεῦμα Θεοῦ ἐπεφέρετο ἐπάνω τοῦ ὕδατος-하나님의 성령(πνεῦμα프네우마, 프뉴마)이 물 위를 덮고 있었다” πνεῦμα는 일반적으로 ‘바람’, ‘영’을 뜻하지만, 교회는 이를 성령(聖靈, Holy Spirit)으로 해석했고, 언셜 코덱스의 주해적 전통은 이 성령론적 해석을 지지함. 이는 '''삼위일체적 창조 해석'''에 부합하는 방향임. | |||
=== 전례적 번역 (Liturgical Translation) === | === 전례적 번역 (Liturgical Translation)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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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특징: 반복 구조 강조, 청중의 반응 유도, 음악적 용이성 | 대표적 특징: 반복 구조 강조, 청중의 반응 유도, 음악적 용이성 | ||
시편의 Διάψαλμα, 문장 단락 나누기, 독서시기 교독 구조 등에서 이 방식이 보임. | 예시: 시편의 Διάψαλμα(디아프살마), 문장 단락 나누기, 독서시기 교독 구조 등에서 이 방식이 보임. | ||
마태복음 1:23 – 임마누엘 해석; 마태는 70인역 이사야 7:14을 인용-"ἡ παρθένος… καὶ καλέσουσι τὸ ὄνομα αὐτοῦ Ἐμμανουήλ-처녀가 잉태하여…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다” 언셜 코덱스는 이 구절을 보존할 뿐 아니라, 종종 주석 여백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신학적 주해를 덧붙임. 일부 사본은 이 본문에 성가의 형식으로 전례적 리듬 표시를 남겨, 예배 중 ‘읽기 이상의 기능’을 수행했음을 보여줌. | |||
== 참고 개념 == | |||
Reception History(수용사): 교회가 성경 본문을 어떻게 읽고, 해석하고, 사용했는가를 연구하는 학문. | |||
Functional Equivalence(기능적 등가, 또는 Dynamic Equivalence): 의미 중심 번역에서 자주 쓰이며, 문자적 정확성보다 수용자에게 동일한 효과를 주는 번역을 우선하는 관점. 전례적 번역과도 맞닿는다. | |||
== 각주 == | |||
[1] 사해사본(DSS)에 칠십인역의 번역과 같은 LXX형 “카아루”(찔렀다) 존재함(LXX와 DSS가 일치) | |||
[2] 추가적으로, “יהוה חפץ דכאו” (여호와께서 그를 상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사, MT), “κυρίῳ εὐδόκησεν καθαρίσαι αὐτὸν τῆς πληγῆς” (주께서 그를 상하게 하여 정결케 하기를 기뻐하셨다, LXX) 모두 고난을 강조하나 LXX는 더 신학적으로 “속죄적 죽음”을 강조하고 있다. | |||
사해사본 이사야 대사본(1QIsaᵃ)는 전체적으로 마소라 본문(MT)과 매우 유사하지만(약 95% 이상 일치), 부분적으로 칠십인역(LXX)과 비슷한 표현이나 해석 뉘앙스가 더 가까운 단어·구절도 존재한다. 이는 LXX가 단순히 헬라어로 의역한 게 아니라, 당시 히브리어 성경의 다른 텍스트 전통을 번역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LXX와 완전히 동일한 문장이 아닌, LXX가 따랐던 히브리어 전통이 1QIsaᵃ에 반영된 듯한 경우로 보임) | |||
예) 사53:11 (MT)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יַרְא יִשְׂבָּע), (LXX) “그의 영혼이 수고한 것을 보고, 빛을 볼 것이다”(LXX에 φῶς = “빛”이 있음) (DSS, 1QIsaᵃ) יַרְא אוֹר וְיִשְׂבָּע “그가 빛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LXX와 일치) MT에는 '빛'(אוֹר)이 없음. LXX는 “빛을 보리라”라고 번역했는데, 1QIsaᵃ에도 이 단어가 존재함. → LXX가 따랐던 히브리어 본문을 직접 입증하는 사례. |
2025년 6월 24일 (화) 09:57 기준 최신판
여기서는, 교회 전통과 맞닿은 성경의 번역 및 어휘 선택의 문제를 다룬다.
신학적 번역 (Theological Translation)
단순히 원문의 문자적 의미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정립된 해석 전통이나 교의적 신념을 반영하여 번역하는 방식.
예시:
- 이사야 7:14에서 "히, almah알마;젊은 여자"를 "헬, 파르테노스parthenos;처녀"로 번역한 70인역의 선택. 70인역 번역자들이 이를 번역할 때, 당시 유대 전통 속에서 '알마'를 실제로 '처녀'로 해석했을 가능성도 있고, 혹은 메시아적 의미를 더하기 위해 '파르테노스'를 의도적으로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는데 이 번역은 훗날 신약성경 마태복음 1:23에서 예수 탄생의 예언으로 직접 인용되며, 기독교 신학에서 중요한 근거로 자리 잡는다.
- 시편 22:16 (히브리어) / 21:17 (70인역); “그들이 내 손과 발을 뚫었다”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 (MT): "כָּאֲרִי יָדַי וְרַגְלָי-사자처럼 내 손과 발을 (둘러쌌다)" – (히: כארי = “사자처럼”) 70인역 (및 언셜 사본들): "ὤρυξαν χεῖράς μου καὶ πόδας-그들이 내 손과 발을 찔렀다/뚫었다" 70인역과 언셜 사본은 히브리어의 ‘כארי(사자처럼)’를 아예 다른 단어인 ‘카루’(뚫다)로 읽고 번역함. 이는 십자가형의 메시아적 예표로 해석하기 위한 선택이며, 기독론적 해석 전통에 맞춘 의도적 번역임. (개역한글/개정/새한글성경 등 한국어 번역본은 칠십인역 자체를 주된 번역 원문으로 삼아 번역한 것은 아니지만, 시편 22편 16절에서는 칠십인역과 유사한 의미(손발을 상하게 하는 행위)를 택하여 번역했으며, 이는 히브리어 원문의 다양한 해석 가능성이나 고대 번역 전통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
- 이사야 53장 – 고난받는 종의 노래; 이사야 53:10 (히브리어): "יִשָּׂם אָשָׁם נַפְשׁוֹ-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삼았을 때…" 70인역 (및 언셜 사본들): "εἰ δοῦτε περὶ ἁμαρτίας-너희가 죄를 위한 희생제로 바친다면…" 원문은 제3자 시점(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인데 반해, 70인역은 예배자가 능동적으로 제사를 바치는 형태로 바꿈. 이는 그리스도의 희생이 제의적으로 참여 가능한 속죄제라는 교회 신학의 강조가 반영된 구조임(이는 예수의 수동적 희생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희생에 대해 신자가 응답하고, 그것에 참여함으로써 구원의 은혜에 동참할 수 있다-신약의 성찬(Eucharist)). [2]
- 이밖에도, 칠십인역(LXX)의 메시아적 해석 등에 대해서 알아보려면 칠십인역 위키문서를 참고할 것.
정경적 번역 (Canonical Translation)
성경이 정경(canon)으로 사용되는 문맥, 즉 교회가 그것을 공적 신앙 고백으로 사용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여 번역하는 방식으로, 성경 본문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이해되어왔는가를 반영한다. 이는 전례, 설교, 신조와의 일관성을 우선한다.
용례: 시편의 셀라selah를 Διάψαλμα(디아프살마) – ‘중간 음악 연주’ 또는 ‘간주’라는 뜻)로 바꾸거나, 예배용 시편에서 구절 구조를 재배치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
교의적 해석 번역 (Dogmatic Translation / Doctrinal Translation)
특정 교의(dogma)-예를 들면 삼위일체, 성육신, 동정녀 탄생 등-을 지지하거나 정통 해석과 충돌하지 않도록 조정된 번역.
예시: 요한복음 1:1 - 신성과 관사 문제; “καὶ Θεὸς ἦν ὁ Λόγος-그리고 하나님은 그 말씀(Logos)이셨다”에서 ‘하나님’에 관사를 넣지 않은 선택은, 성자의 신성을 교의적으로 명확히 하려는 번역적 판단일 수 있음. (헬라어 문법상 관사가 없으면 '신적인'이라는 성격을 가리키기도 하나, 정통 삼위일체 신학에 맞춰 해석. 사소한 문법적 가능성보다, 성자 예수의 ‘완전한 신성’을 고백하는 구조를 유지)
창세기 1:2 – 성령에 대한 표현; "וְרוּחַ אֱלֹהִים מְרַחֶפֶת עַל־פְּנֵי הַמָּיִם-하나님의 영(ruach루아흐)이 물 위에 운행하셨다” ▷ 70인역 및 언셜 코덱스 "πνεῦμα Θεοῦ ἐπεφέρετο ἐπάνω τοῦ ὕδατος-하나님의 성령(πνεῦμα프네우마, 프뉴마)이 물 위를 덮고 있었다” πνεῦμα는 일반적으로 ‘바람’, ‘영’을 뜻하지만, 교회는 이를 성령(聖靈, Holy Spirit)으로 해석했고, 언셜 코덱스의 주해적 전통은 이 성령론적 해석을 지지함. 이는 삼위일체적 창조 해석에 부합하는 방향임.
전례적 번역 (Liturgical Translation)
예배(Liturgy)나 공적 낭송에서 사용되기 적절하도록 리듬, 구조, 명료성, 신학적 함의 등을 고려한 번역.
대표적 특징: 반복 구조 강조, 청중의 반응 유도, 음악적 용이성
예시: 시편의 Διάψαλμα(디아프살마), 문장 단락 나누기, 독서시기 교독 구조 등에서 이 방식이 보임.
마태복음 1:23 – 임마누엘 해석; 마태는 70인역 이사야 7:14을 인용-"ἡ παρθένος… καὶ καλέσουσι τὸ ὄνομα αὐτοῦ Ἐμμανουήλ-처녀가 잉태하여…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다” 언셜 코덱스는 이 구절을 보존할 뿐 아니라, 종종 주석 여백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신학적 주해를 덧붙임. 일부 사본은 이 본문에 성가의 형식으로 전례적 리듬 표시를 남겨, 예배 중 ‘읽기 이상의 기능’을 수행했음을 보여줌.
참고 개념
Reception History(수용사): 교회가 성경 본문을 어떻게 읽고, 해석하고, 사용했는가를 연구하는 학문.
Functional Equivalence(기능적 등가, 또는 Dynamic Equivalence): 의미 중심 번역에서 자주 쓰이며, 문자적 정확성보다 수용자에게 동일한 효과를 주는 번역을 우선하는 관점. 전례적 번역과도 맞닿는다.
각주
[1] 사해사본(DSS)에 칠십인역의 번역과 같은 LXX형 “카아루”(찔렀다) 존재함(LXX와 DSS가 일치)
[2] 추가적으로, “יהוה חפץ דכאו” (여호와께서 그를 상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사, MT), “κυρίῳ εὐδόκησεν καθαρίσαι αὐτὸν τῆς πληγῆς” (주께서 그를 상하게 하여 정결케 하기를 기뻐하셨다, LXX) 모두 고난을 강조하나 LXX는 더 신학적으로 “속죄적 죽음”을 강조하고 있다.
사해사본 이사야 대사본(1QIsaᵃ)는 전체적으로 마소라 본문(MT)과 매우 유사하지만(약 95% 이상 일치), 부분적으로 칠십인역(LXX)과 비슷한 표현이나 해석 뉘앙스가 더 가까운 단어·구절도 존재한다. 이는 LXX가 단순히 헬라어로 의역한 게 아니라, 당시 히브리어 성경의 다른 텍스트 전통을 번역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LXX와 완전히 동일한 문장이 아닌, LXX가 따랐던 히브리어 전통이 1QIsaᵃ에 반영된 듯한 경우로 보임)
예) 사53:11 (MT)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יַרְא יִשְׂבָּע), (LXX) “그의 영혼이 수고한 것을 보고, 빛을 볼 것이다”(LXX에 φῶς = “빛”이 있음) (DSS, 1QIsaᵃ) יַרְא אוֹר וְיִשְׂבָּע “그가 빛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LXX와 일치) MT에는 '빛'(אוֹר)이 없음. LXX는 “빛을 보리라”라고 번역했는데, 1QIsaᵃ에도 이 단어가 존재함. → LXX가 따랐던 히브리어 본문을 직접 입증하는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