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느헤미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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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와 주요 인물 ==


'''에스라'''; '여호와께서 도우신다'라는 뜻의 이름. 모세와 아론이 이끈 출애굽 사건보다는 덜 인상적이긴 하지만 바벨론에서 이스라엘이 제2의 출애굽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으며 더군다나 그는 아론의 직계 후손이다(스7:1~5) 세번의 바벨론 유수(기원전 605, 597, 586년)와 같이, [[wikipedia:Cyrus_the_Great|고레스]][5] 칙령에 따라 세번의 귀환 중 2차 귀환을 이끌었다. (1차; 스룹바벨, 기원전 538년, 2차; 에스라, 기원전 458년, 3차; 느헤미야, 기원전 444년)


역대기의 저자라는 것이 전통적인 견해이다.
[[wikipedia:Ezra's_Tomb|에스라의 무덤]]은 이라크 티그리스강 서쪽 해안에 위치하나 논쟁이 있다.[6]
'''느헤미야'''; '여호와의 위로'라는 뜻의 이름. 고국에서 온 동료로부터 유다에 큰 환난이 있었고 그 성은 파괴되었다는 슬픈 소식을 듣고 슬피 울며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리게 된다. (느1장) 이 때 [[wikipedia:Cup-bearer|왕의 술 관원]]이 되었는데, 이는 왕의 신임을 받은 고관이 맡은 직책이었다.[7] (독살 등 끊임없는 두려움 때문에)
#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깊은 관심과 간절한 중보기도(4개월간)
# 주님의 말씀을 주장하며 기도함(느1:8-9)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 돌아오게 하리라 (레26:27~45, 신29:14~30:10)
#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일을 하기에 적합한 자질과 좋은 기회를 포착
# 마침내 기도의 응답; [[wikipedia:Artaxerxes_I|아닥사스다 왕]][8]이 그의 근심에 연민어린 관심을 보임(느2:2)
# 성전재건을 윤허받고 이에 필요한 재료도 공급받음, 유다 총독으로 12년간 재임함.
(느헤미야 시대의 예루살렘을 보려면 구글에서 [https://www.google.com/search?sca_esv=53df954e461a4d09&sca_upv=1&sxsrf=ADLYWIKbyeCej9WKxGkBFGvg1DsV147BVQ:1726614010239&q=Jerusalem+in+the+Nehemiah+Period&udm=2&fbs=AEQNm0DmKhoYsBCHazhZSCWuALW8l8eUs1i3TeMYPF4tXSfZ96qP8jk59Ek0sz1u1YABeO97Kg_HO-KtF2S8ZC2gd6OMgxanGK0ucuQE0TMKSErHKZatwft6SUAxXFC4AlhEtt-y3hY67m-iSoqPnUtqV7pmJhD7VShElub9Z5RiEc3TyQT_j4SeG-EytreydNRLWmpoqVwc&sa=X&ved=2ahUKEwjkh_q1isuIAxXWzjgGHfX3GfkQtKgLegQICBAB&biw=1162&bih=1155&dpr=1.1 Jerusalem in the Nehemiah Period]를 검색할 것.)
'''스룹바벨'''; '바벨론 출생'이란 뜻의 이름. 대제사장의 아들인 예수아와 함께 예루살렘에 귀환하여 먼저 번제단을 세우고 새 성전의 기초를 놓기 시작했다. 스룹바벨의 성전 재건 사역(B.C. 538-470년)은 대적들의 모함으로 일시 중지되었고(스4:6-7), [[wikipedia:Darius_the_Great|다리오]][9] 2년(B.C. 520년)에 작업이 재개되어 4년 후에 완공되었다(스6:13-22). 학개 선지자는 성전을 재건한 스룹바벨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부르며, 하나님의 날에 인(印)을 삼을 것이라고 하였다(학2:23). 곧 학개 선지자는 스룹바벨을 장차 오실 메시야를 예표하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10]
== 성전재건과 회복의 70년; 예언의 성취 ==
# '''남유다 멸망 시기''': 남유다는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했다. 이 해에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되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다.
# '''스룹바벨 성전의 재건 시작 시기''': 스룹바벨 성전의 재건은 기원전 538년에 시작되었다. 이 시기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후에 해당한다.[11]
# '''완공 시기''': 스룹바벨 성전은 기원전 516년에 완공되었다. (총 22년 소요) 이로써 유대인들은 다시 성전을 중심으로 한 예배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 예레미야가 예언한 70년의 회복기간(바벨론 포로 생활의 기간, 렘25:11-12, 29:10)의 성취
# 이사야가 예언한 고레스 왕을 통한 이스라엘을 도우시겠다는 예언의 성취(사44:1, 45:1 이하)[12]
(당시 유대인들의 귀환경로를 보려면 구글에서 [https://www.google.com/search?q=Jews+Return+from+Exile&sca_esv=e9ea40622f6d2cac&sca_upv=1&udm=2&biw=1665&bih=1025&sxsrf=ADLYWIIMBwfWi7sC2zqeAb1v750pUlXE6Q%3A1726657835227&ei=K7XqZq_FDevO2roPoviZwA8&ved=0ahUKEwjvhqvXrcyIAxVrp1YBHSJ8BvgQ4dUDCBA&oq=Jews+Return+from+Exile&gs_lp=Egxnd3Mtd2l6LXNlcnAiFkpld3MgUmV0dXJuIGZyb20gRXhpbGUyBxAAGIAEGBNIlQ5QAFgAcAB4AJABAJgBfKABfKoBAzAuMbgBDMgBAPgBAvgBAZgCAaACfZgDAJIHAzAuMaAHUg&sclient=gws-wiz-serp Jews Return from Exile]를 검색할 것.)
('''에스라-느헤미야, 그리고 에스더, 말라기의 연대표'''를 보려면 구글에서 [https://www.google.com/search?q=Timeline+of+Ezra+and+Nehemiah+and+esther%2C+malachi&sca_esv=9967b14e20c7abd4&sca_upv=1&udm=2&biw=2327&bih=1155&sxsrf=ADLYWIIF0NSGfkO-Kve2lB9GiriAhFxGrQ%3A1726644205381&ei=7X_qZr_qFv7c2roP5NK3gAk&ved=0ahUKEwj_lI_0-suIAxV-rlYBHWTpDZAQ4dUDCBA&uact=5&oq=Timeline+of+Ezra+and+Nehemiah+and+esther%2C+malachi&gs_lp=Egxnd3Mtd2l6LXNlcnAiMVRpbWVsaW5lIG9mIEV6cmEgYW5kIE5laGVtaWFoIGFuZCBlc3RoZXIsIG1hbGFjaGlI4UZQzw1YrUNwAXgAkAEAmAGTAaABjwqqAQMwLjm4AQPIAQD4AQGYAgCgAgCYAwCIBgGSBwCgB5UD&sclient=gws-wiz-serp Timeline of Ezra and Nehemiah and esther, malachi]를 검색할 것.)
(바사의 왕들의 연대표를 보려면 구글에서 [https://www.google.com/search?sca_esv=e9ea40622f6d2cac&sca_upv=1&sxsrf=ADLYWIKhi6EaRzLj_ZC-4t2BqpXxvV42ww:1726658072844&q=Timeline+of+Kings+of+Persia&udm=2&fbs=AEQNm0DmKhoYsBCHazhZSCWuALW8l8eUs1i3TeMYPF4tXSfZ96qP8jk59Ek0sz1u1YABeO97Kg_HO-KtF2S8ZC2gd6OMgxanGK0ucuQE0TMKSErHKZatwft6SUAxXFC4AlhEtt-y3hY67m-iSoqPnUtqV7pmJhD7VShElub9Z5RiEc3TyQT_j4SeG-EytreydNRLWmpoqVwc&sa=X&sqi=2&ved=2ahUKEwi5_NHIrsyIAxXXp1YBHVYAIfsQtKgLegQIEBAB&biw=1665&bih=1025&dpr=1.1#vhid=gfI-SelHr7T4SM&vssid=mosaic Timeline of Kings of Persia]를 검색할 것.)
== 각주 ==
[1] 넬슨성경개관, 2012년, 조이선교회출판사. 164p
[1] 넬슨성경개관, 2012년, 조이선교회출판사. 1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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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히브리 성경]]의 정경 정립 과정을 참고할 것.
[4] [[히브리 성경]]의 정경 정립 과정을 참고할 것.
[5] 키루스 2세(Cyrus II); '태양'이란 뜻의 이름. 일반적으로 키루스 대제로 알려진 그는 아케메네스 제국의 창시자이다. (기원전 550~530년 군림)
한국컴퓨터선교회(KCM) [http://kcm.kr/dic_view.php?nid=745&key=&kword=%B0%ED%B7%B9%BD%BA&page= 고레스(Cyrus) 링크], 세계역사백과(World History Encyclopedia) [https://www.worldhistory.org/Cyrus_the_Great/ 고레스(Cyrus the Great)의 링크]
(키루스 대왕의 최대 영토를 확인하려면 구글에서 [https://www.google.com/search?sca_esv=9967b14e20c7abd4&sca_upv=1&sxsrf=ADLYWIJzM5c7_anbsFTaHieVpn8lzmBZvQ:1726646631460&q=Cyrus+the+Great%27s+greatest+territory&udm=2&fbs=AEQNm0DmKhoYsBCHazhZSCWuALW8l8eUs1i3TeMYPF4tXSfZ96qP8jk59Ek0sz1u1YABeO97Kg_HO-KtF2S8ZC2gd6OMgxanGK0ucuQE0TMKSErHKZatwft6SUAxXFC4AlhEtt-y3hY67m-iSoqPnUtqV7pmJhD7VShElub9Z5RiEc3TyQT_j4SeG-EytreydNRLWmpoqVwc&sa=X&ved=2ahUKEwiRvfv4g8yIAxWsklYBHe4CKooQtKgLegQIEhAB&biw=2327&bih=1155&dpr=1.1#vhid=_0MtAOdvGm4uQM&vssid=mosaic Cyrus the Great's greatest territory]를 검색할 것.)
[6]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에스라가 죽어 예루살렘에 묻혔다고 기록했으나 그러나 수백 년 후에 그의 이름으로 된 위조 무덤이 1050년경 이라크에서 발견되었다고 주장되었다.
[7] 톰슨II 성경주석(개역개정판), by 강병도(2008년). 기독지혜사. 727p
[8]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Artaxerxes I);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의 다섯번째 왕중왕. (기원전 465-424년 군림)
[9] 다리우스 1세(Darius I);  일반적으로 다리우스 대제로 알려진 페르시아의 통치자로, 기원전 522년부터 기원전 486년 사망할 때까지 아케메네스 제국의 세 번째 왕중왕으로 재위했다.
[10] 네이버 지식백과-라이프성경사전, (2006년) 가스펠서브
[11] [https://bibleproject.com/ BibleProject](by Tim Mackie, Jon Collins)의 [https://www.youtube.com/watch?v=IxHJN4cOl-c 에스라-느헤미야 영상]에서는 스룹바벨과 느헤미야가 다소 실망스럽다고 하였는데, 이는 주변 거류민 등을 거부하고 갈등을 겪는 것, 이방여인과 결혼을 무효화 한 것 등 신앙의  순수성을 위한 것이요, 선지자들이 본 환상(열두지파와 열방, 성벽없는 언약의 백성 등)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다가올 주님의 영광스러운 나라를 의미하는 소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소 실망스러운 결말의 반복을 통해 소망을 더 부여잡는 반전이 되도록 구조를 택한 것 같다. (한국 뿐만 아니라 [https://www.youtube.com/watch?v=MkETkRv9tG8&t=3s 영어판] 댓글에서도 수정 또는 재업로드를 요청하는 분들이 많다)
[12] 이 예언은 고레스가 페르시아의 왕이 되었던 기원전 6세기 중반에 해당한다. 이사야는 고레스가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사야의 예언은 고레스가 왕이 되기 약 150년 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칙령의 진위성에 대한 논쟁은 (고레스의 서판이라 불리는) 키루스 실린더의 특정 구절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특히 키루스(고레스)가 속국 사람들을 귀환시키고 성소를 복원하는 일반 정책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과연, 당시 절대 강대국의 승인 없이 5만명에 이르는 포로들이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반문해보면 될 것이다. 고레스는 다신론에 젖어 하나님을 알지 못했으나(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사45:4)) 외교 정책상 회유적으로 속국들에게 관대한 처우를 해주었다는 사실이다. 
상기 [[wikipedia:Cyrus_Cylinder|고레스의 원통(실린더)]]에 대해서는 영문 위키피디아의 링크를 참고할 것. 원통형 석인에 기록된 고레스의 행정 정책에 대해서는 '톰슨II성경주석(개역개정판, 2008년) 710p'와 'IVP 성경배경주석(2010년), 657~658p'을 참고할 것.

2025년 5월 3일 (토) 06:19 기준 최신판

개요

히브리어 원본과 헬라어 성경 70인 역에서는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를 한 권으로 취급한다. 라틴어 번역본과 마찬가지로 영어 번역본에서는 두 권으로 나눈다.[1][2] 일반적으로 기원후 2세기 경에 히브리 성경의 정경이 확립되면서 이 두 책이 하나로 묶이기 시작했다고 여겨진다. 이 시기에 유대교의 경전이 정리되면서 두 책이 연결된 역사적 배경과 주제[3]를 고려하여 하나의 책으로 묶이게 되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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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주요 인물

에스라; '여호와께서 도우신다'라는 뜻의 이름. 모세와 아론이 이끈 출애굽 사건보다는 덜 인상적이긴 하지만 바벨론에서 이스라엘이 제2의 출애굽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으며 더군다나 그는 아론의 직계 후손이다(스7:1~5) 세번의 바벨론 유수(기원전 605, 597, 586년)와 같이, 고레스[5] 칙령에 따라 세번의 귀환 중 2차 귀환을 이끌었다. (1차; 스룹바벨, 기원전 538년, 2차; 에스라, 기원전 458년, 3차; 느헤미야, 기원전 444년)

역대기의 저자라는 것이 전통적인 견해이다.

에스라의 무덤은 이라크 티그리스강 서쪽 해안에 위치하나 논쟁이 있다.[6]

느헤미야; '여호와의 위로'라는 뜻의 이름. 고국에서 온 동료로부터 유다에 큰 환난이 있었고 그 성은 파괴되었다는 슬픈 소식을 듣고 슬피 울며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리게 된다. (느1장) 이 때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는데, 이는 왕의 신임을 받은 고관이 맡은 직책이었다.[7] (독살 등 끊임없는 두려움 때문에)

  1.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깊은 관심과 간절한 중보기도(4개월간)
  2. 주님의 말씀을 주장하며 기도함(느1:8-9)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 돌아오게 하리라 (레26:27~45, 신29:14~30:10)
  3.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일을 하기에 적합한 자질과 좋은 기회를 포착
  4. 마침내 기도의 응답; 아닥사스다 왕[8]이 그의 근심에 연민어린 관심을 보임(느2:2)
  5. 성전재건을 윤허받고 이에 필요한 재료도 공급받음, 유다 총독으로 12년간 재임함.

(느헤미야 시대의 예루살렘을 보려면 구글에서 Jerusalem in the Nehemiah Period를 검색할 것.)

스룹바벨; '바벨론 출생'이란 뜻의 이름. 대제사장의 아들인 예수아와 함께 예루살렘에 귀환하여 먼저 번제단을 세우고 새 성전의 기초를 놓기 시작했다. 스룹바벨의 성전 재건 사역(B.C. 538-470년)은 대적들의 모함으로 일시 중지되었고(스4:6-7), 다리오[9] 2년(B.C. 520년)에 작업이 재개되어 4년 후에 완공되었다(스6:13-22). 학개 선지자는 성전을 재건한 스룹바벨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부르며, 하나님의 날에 인(印)을 삼을 것이라고 하였다(학2:23). 곧 학개 선지자는 스룹바벨을 장차 오실 메시야를 예표하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10]

성전재건과 회복의 70년; 예언의 성취

  1. 남유다 멸망 시기: 남유다는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했다. 이 해에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되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다.
  2. 스룹바벨 성전의 재건 시작 시기: 스룹바벨 성전의 재건은 기원전 538년에 시작되었다. 이 시기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후에 해당한다.[11]
  3. 완공 시기: 스룹바벨 성전은 기원전 516년에 완공되었다. (총 22년 소요) 이로써 유대인들은 다시 성전을 중심으로 한 예배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4. 예레미야가 예언한 70년의 회복기간(바벨론 포로 생활의 기간, 렘25:11-12, 29:10)의 성취
  5. 이사야가 예언한 고레스 왕을 통한 이스라엘을 도우시겠다는 예언의 성취(사44:1, 45:1 이하)[12]

(당시 유대인들의 귀환경로를 보려면 구글에서 Jews Return from Exile를 검색할 것.)

(에스라-느헤미야, 그리고 에스더, 말라기의 연대표를 보려면 구글에서 Timeline of Ezra and Nehemiah and esther, malachi를 검색할 것.)

(바사의 왕들의 연대표를 보려면 구글에서 Timeline of Kings of Persia를 검색할 것.)

각주

[1] 넬슨성경개관, 2012년, 조이선교회출판사. 164p

[2] 반면에, 라틴어 번역과 영어 번역본에서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를 두 권으로 나눈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1. 문서의 독립성: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각각 다른 저자에 의해 쓰여졌으며, 내용적으로도 구분되는 부분이 많다. 이 두 책은 서로 다른 사건과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독립적인 책으로 간주된다.
  2. 기독교 전통: 기독교 성경의 편집 과정에서, 성경의 책들이 각기 다른 주제와 메시지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두 권으로 나누어졌다. 이는 독자들이 각 책의 내용을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3. 번역의 역사: 라틴어 성경과 이후의 영어 번역본들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형성된 전통을 따르며, 이 과정에서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를 별도의 책으로 편집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시간이 지나면서도 유지되었다.

결과적으로,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서로 연결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기독교 전통 내에서는 독립적인 책으로 인식되어 두 권으로 나누어졌다.

[3]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의 예루살렘의 재건과 성전 회복, 그리고 율법의 회복

[4] 히브리 성경의 정경 정립 과정을 참고할 것.

[5] 키루스 2세(Cyrus II); '태양'이란 뜻의 이름. 일반적으로 키루스 대제로 알려진 그는 아케메네스 제국의 창시자이다. (기원전 550~530년 군림)

한국컴퓨터선교회(KCM) 고레스(Cyrus) 링크, 세계역사백과(World History Encyclopedia) 고레스(Cyrus the Great)의 링크

(키루스 대왕의 최대 영토를 확인하려면 구글에서 Cyrus the Great's greatest territory를 검색할 것.)

[6]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에스라가 죽어 예루살렘에 묻혔다고 기록했으나 그러나 수백 년 후에 그의 이름으로 된 위조 무덤이 1050년경 이라크에서 발견되었다고 주장되었다.

[7] 톰슨II 성경주석(개역개정판), by 강병도(2008년). 기독지혜사. 727p

[8]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Artaxerxes I);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의 다섯번째 왕중왕. (기원전 465-424년 군림)

[9] 다리우스 1세(Darius I); 일반적으로 다리우스 대제로 알려진 페르시아의 통치자로, 기원전 522년부터 기원전 486년 사망할 때까지 아케메네스 제국의 세 번째 왕중왕으로 재위했다.

[10] 네이버 지식백과-라이프성경사전, (2006년) 가스펠서브

[11] BibleProject(by Tim Mackie, Jon Collins)의 에스라-느헤미야 영상에서는 스룹바벨과 느헤미야가 다소 실망스럽다고 하였는데, 이는 주변 거류민 등을 거부하고 갈등을 겪는 것, 이방여인과 결혼을 무효화 한 것 등 신앙의 순수성을 위한 것이요, 선지자들이 본 환상(열두지파와 열방, 성벽없는 언약의 백성 등)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다가올 주님의 영광스러운 나라를 의미하는 소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소 실망스러운 결말의 반복을 통해 소망을 더 부여잡는 반전이 되도록 구조를 택한 것 같다. (한국 뿐만 아니라 영어판 댓글에서도 수정 또는 재업로드를 요청하는 분들이 많다)

[12] 이 예언은 고레스가 페르시아의 왕이 되었던 기원전 6세기 중반에 해당한다. 이사야는 고레스가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사야의 예언은 고레스가 왕이 되기 약 150년 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칙령의 진위성에 대한 논쟁은 (고레스의 서판이라 불리는) 키루스 실린더의 특정 구절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특히 키루스(고레스)가 속국 사람들을 귀환시키고 성소를 복원하는 일반 정책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과연, 당시 절대 강대국의 승인 없이 5만명에 이르는 포로들이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반문해보면 될 것이다. 고레스는 다신론에 젖어 하나님을 알지 못했으나(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사45:4)) 외교 정책상 회유적으로 속국들에게 관대한 처우를 해주었다는 사실이다.

상기 고레스의 원통(실린더)에 대해서는 영문 위키피디아의 링크를 참고할 것. 원통형 석인에 기록된 고레스의 행정 정책에 대해서는 '톰슨II성경주석(개역개정판, 2008년) 710p'와 'IVP 성경배경주석(2010년), 657~658p'을 참고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