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두 판 사이의 차이

ted_wiki
71번째 줄: 71번째 줄:


=== [https://ko.wikipedia.org/wiki/%EB%B9%84%EB%B8%94%EB%A6%AC%EC%95%84_%ED%97%A4%EB%B8%8C%EB%9D%BC%EC%9D%B4%EC%B9%B4_%EC%8A%88%ED%88%AC%ED%8A%B8%EA%B0%80%EB%A5%B4%ED%85%90%EC%8B%9C%EC%95%84 BHS], [https://ko.wikipedia.org/wiki/%EB%85%B8%EB%B6%90_%ED%85%8C%EC%8A%A4%ED%83%80%EB%A9%98%ED%88%BC_%EA%B7%B8%EB%9D%BC%EC%9D%B4%EC%BC%80 네슬레-알란드] ===
=== [https://ko.wikipedia.org/wiki/%EB%B9%84%EB%B8%94%EB%A6%AC%EC%95%84_%ED%97%A4%EB%B8%8C%EB%9D%BC%EC%9D%B4%EC%B9%B4_%EC%8A%88%ED%88%AC%ED%8A%B8%EA%B0%80%EB%A5%B4%ED%85%90%EC%8B%9C%EC%95%84 BHS], [https://ko.wikipedia.org/wiki/%EB%85%B8%EB%B6%90_%ED%85%8C%EC%8A%A4%ED%83%80%EB%A9%98%ED%88%BC_%EA%B7%B8%EB%9D%BC%EC%9D%B4%EC%BC%80 네슬레-알란드] ===
이 문단에서는 성서학자들이 말하는 '비평 본문(批評本, critical edition)'에 대해 다룬다. 이는 성경의 원문을 연구하고 비평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텍스트를 의미한다.  
이 문단에서는 성서학자들이 말하는 '비평 본문(批評本, critical edition)'에 대해 다룬다. 이는 성경의 원문을 연구하고 비평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텍스트를 의미한다.
 
(히브리어 성경 사본 목록을 보려면 [[wikipedia:List_of_Hebrew_Bible_manuscripts|영문 위키피디아 링크]]를 참고할 것.)


[[wikipedia:Rudolf_Kittel|루돌프 키텔]](Rudolf Kittel)은 독일의 구약학자로, 1901년에 최초로 히브리어 성서의 비평 편집본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비블리아 헤브라이카'''(Biblia Hebraica, BH 또는 BHK, 1906년~)는 제3판까지 [https://ko.wikipedia.org/wiki/%EB%AF%B8%ED%81%AC%EB%9D%BC%EC%98%B7_%EA%B7%B8%EB%8F%8C%EB%A1%AF 미크라옷 그돌롯](Mikraot Gedolot), 레닌그라드 사본의 마소라 본문을 사용했다.  
[[wikipedia:Rudolf_Kittel|루돌프 키텔]](Rudolf Kittel)은 독일의 구약학자로, 1901년에 최초로 히브리어 성서의 비평 편집본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비블리아 헤브라이카'''(Biblia Hebraica, BH 또는 BHK, 1906년~)는 제3판까지 [https://ko.wikipedia.org/wiki/%EB%AF%B8%ED%81%AC%EB%9D%BC%EC%98%B7_%EA%B7%B8%EB%8F%8C%EB%A1%AF 미크라옷 그돌롯](Mikraot Gedolot), 레닌그라드 사본의 마소라 본문을 사용했다.  

2024년 9월 15일 (일) 06:14 판

여기서는 기독교, 특히 개신교의 성경에 대해서 다룬다.

성경 기록과 번역의 역사

성경의 원문은 소실되어 없으며, 원문에 가깝다 여겨지는 여러 판본(필사본)들이 존재한다. 구약성경의 여러 판본들 가운데 시대별로 신뢰성이 높다 여겨지는 판본을 번역하거나 번역본을 다른 언어로 재번역하는 등의 절차로 생겨났다. 구약성서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사본의 종류는 사해문서인데 이는 1947년에 발견된 이후 약 250개 이상의 사본이 있는 반면, 신약성서는 헬라어 사본 약 5,800개 이상, 라틴어 사본 약 10,000개 이상, 시리아어, 아르메니아어, 에티오피아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사본들이 있으며, 이는 고대 문서 중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편에 속한다.

70인역(칠십인역, LXX)

기원전 300년경, 히브리인의 경전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집트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의 명으로, 이스라엘 12지파에서 각각 6명씩 72명의 유대인 번역자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했다는 설이 있다. 1세기 경의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저서, 유대 고대사에서 70인의 장로들과 2명의 사자가 알렉산드리아에 파견되었다는 기술이 남아있다.

  1. 알렉산더 대왕이라 불리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3세의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헬라어는 공용어로 사용되었다.
  2. 기원전 1세기 이후 로마제국의 지배시기에도 헬라어의 영향이 강력했으며,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아람어가 사용되며 히브리어를 읽지 못하고 헬라어에 익숙한 유대인들이 많았다. 로마제국 각지에 흩어살던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은 헬라어가 모어가 된다.
  3. 때문에, 초대교회에서 바울을 포함한 사도들이 인용한 구약성경은 70인역이었다.
  4. 라틴어 불가타 번역의 기초가 된다.
  5. 그러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마소라 본문만을 인정했기 때문에 현대 개신교의 많은 종파에서는 70인역에만 포함되는 외경은 성경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본다.

불가타(Vulgata)

새 라틴어 성경으로 헬라어 원문 성경을 5세기 초에 라틴어로 번역한 역본이다. 이는 원문에 매우 충실하고 정확한 번역일 뿐만 아니라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라틴어로 되어 있었으므로 5세기 이후 서방교회 사회에 널리 보급되었다. 현재에도 천주교회의 정본이다. 개신교의 종교개혁 이후 루터의 독일어 성경 번역을 시작으로 다양한 국가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1.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포된 것은 제37대 교황 다마소 1세가 재임하던(380년) 중이었다. 그리고 그의 교회 개혁에 따라 라틴어가 서방교회 지역의 중심적 전례 언어가 되었다.
  2. 당시에는 성경의 라틴어 번역본이 여러 역자가 번역하여 용어와 구성에 통일성이 없이 난잡하고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라틴어 지역에서 가톨릭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통일성 있는 새로운 공용 라틴어 성경 번역본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3. 그는 자신의 비서로 임명한 히에로니무스(제롬Jerome)에게 헬라어 신약성경과 70인역 구약성경을 정확히 라틴어로 번역하라고 요청했다. 그는 부정확한 옛 라틴어 번역본에서 벗어나 당시 대중이 널리 사용하는 대중 라틴어로 정확하게 번역하도록 강조하였다. (382년)
  4. 성 히에로니무스는 (이때부터 406년까지) 신약성경을 헬라어에서 라틴어로 직접 번역하였고, 구약성경의 경우에는 헬라어로 쓰인 70인역에서 번역하였다가 3차번역에서 히브리어 원문에서 라틴어로 직접 번역했다. 이 성경 번역본은 가톨릭 교회의 공의회를 통해 공식적인 라틴어 성경으로 인준을 받았다.

마소라 본문(Masoretic Text, MT)

유대교의 권위있는 24권의 타나크, 즉 히브리어(일부 아람어)로 된 본문(판본)이다. 중세 7~10세기 사이에 복사 및 편집, 배포되었다.

타나크 24권: 율법서(토라, 5권), 예언서(8권, 네비임), 성문서(8권, 케투빔), 기타/사서(3권)

(기독교와 달리 상/하권으로 나누지 않고 한권으로 본다. 자세한 목록은 타나크 위키피디아 링크를 참고하라.)

마소라 본문이 중요한 이유는, 마소라테스(Masoretes)라 불리는 마소라 학자들이 히브리 성경 본문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수정하여 오류를 최소화하여 정확하게 하여 히브리 성경이 오랜 세월 동안 보존하고 전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마소라 본문의 가장 오래된 사본 중의 하나인 레닌그라드 사본(1008년)은 비블리아 헤브라이카(BH),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슈투트가르텐시아(BHS)의 히브리어 본문으로 복제되었다.

존 위클리프월리엄 틴들

영국의 기독교 신학자이자 종교개혁자인,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의 가장 큰 업적은 라틴어로 쓰여져 있던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약 13년간, 1382~1395). 라틴어가 이미 고어가 되었음에도, 14세기에는 교황의 명령에 따라 성경 번역이 서방교회 법률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 소수의 사제들만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신도 대중들이 성경을 알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정보 제한 역할을 하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제롬의 불가타 성경은 당시 대중들이 알지 못했던 옛 라틴어 성경을 대중 라틴어로 정확하게 번역한 것이었다.

월리엄 틴들(William Tyndale)은 위클리프에게 영향을 받아 헬라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다. (1525년) 흠정역(KJV) 영어판의 70%가 이에 근거한다.

구텐베르크 성경(독: Gutenberg-Bibel)과 독일어 성경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인쇄술로 최초로 대량으로 인쇄된 성경으로, 본문은 라틴어 불가타 성경이다. (1455년)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독일어 성경 번역은 1522년에 시작되어 1534년에 완성되었다. 루터는 불가타 뿐만 아니라 히브리어 구약성경, 헬라어 신약성경을 직접 번역하였다. 루터의 독일어 성경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덕분에 빠르게 보급되면서 독일의 기독교인들은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제네바 성경

제네바 성경(Geneva Bible)은 킹 제임스 성경보다 51년 앞선 영어 성경으로(1560년), 역사적으로 중요한 번역본 중 하나이다. 영국 여왕 메리 1세의 공포정치로 영국의 비국교도들은 스위스 제네바 독립시로 망명하였다. 제네바 성경은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망명한 개신교도들에 의해 번역된 성경이다. (본문은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이다.)이는 16세기 영국 개신교도들의 주요 성서였으며 윌리엄 셰익스피어, 올리버 크롬웰, 존 녹스, 존 던, 그리고 《천로역정》(1678년)의 저자 존 번연이 사용하였다. 메이플라워호를 통해 미국으로 전해진 성경 중 하나이기도 했다.

흠정역(KJV)

킹 제임스 성경(The King James Version, KJV 또는 KJB)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그리고 아일랜드 왕국의 국왕 제임스 1세의 명으로 1604년에 번역을 시작하여 1611년에 끝마친 기독교 성경의 영어 번역본이다. 틴들의 성경과 제네바 성경에 영향을 받았다.

본문은 구약성서는 히브리어와 아람어에서, 신약성경은 헬라어에서, 그리고 외경은 헬라어와 라틴어에서 번역되었다. (초기에는 외경이 부록 형태로 포함되어 있었으나 1629년 이후 외경은 삭제된다.)

사해사본(死海寫本)

사해문서(Dead Sea Scrolls), 두루마리, 또는 쿰란 문서라고도 한다. 1947년에서 1956년경까지 10년에 걸쳐 서해 서쪽에 있는 쿰란 주변과 동굴들에서 발견되었다. 이들의 연대는 기원전 2세기로 여기서 발견된 히브리 성서는 현존하는 구약 사본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사본이다. 히브리어와 그 방언, 일부 아람어와 코이네 그리스어(헬라어의 후계자)로 기록되었다.

사해사본이 발견되기 전에는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성경은 마소라 본문(약 9c)이었다-사해사본은 그 날짜를 무려 천 년 앞당겨 기원전 2세기로 끌어올린다. 이것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성스러운 텍스트가 100년경의 잠니아 회의의 개혁 또는 이후 수백년의 필사과정에서 수정되거나 훼손되었을지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다.

성서의 텍스트(text)는 조금도 훼손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해 문서의 발견은 이것을 결정적으로 확인 시켜주었다

Christopher de hamel(2001), The book: A history of the Bible. 328~329p

(발굴과정과 기원에 대한 여러 견해, 그리고 고고학적 관점에 대해서는 영문 위키피디아 링크를 참고할 것).

현재 대부분의 문서는 예루살렘의 지혜의 신전 도서관(Shrine of the Book)에 보관되어 있다.

최초의 한글 성경과 초기 번역 (존 로스, 이수정의 마가복음)

존 로스(John Ross)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장로교 선교사이며 중국에서 선교활동 중 최초로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한 사람이다. 1887년 만주에서 백홍준 등의 도움을 받아 신약전서(예수셩교전서)를 출판하였다-한문 성경을 번역하고 그리스어, 영어성경과 대조하여 수정하였다.

(그의 선교활동과 번역과정은 상기 위키피디아 링크를 참고할 것.)

연세대학교에 인쇄본이 남아있으며 국가등록문화재 제669호로 지정되었다.

이수정(李樹廷)은 조선 말의 개신교 신자이자 성서번역가이다.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를 무사히 피신시키고 일본 체류 중 개종했다. 마가복음을 한글로 번역하였고(신약마가전복음서언해, 1885년), 당시 일본에 체류중이었던 아펜젤러언더우드 선교사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이로써 미국에서 일본을 통해 한국에 입국하는 선교사들은 이수정의 한국어 번역본 성경을 가지고 선교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의 생애와 활동에 대해서는 상기 위키피디아 링크와 네이버 지식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 링크를 참고할 것.)

BHS, 네슬레-알란드

이 문단에서는 성서학자들이 말하는 '비평 본문(批評本, critical edition)'에 대해 다룬다. 이는 성경의 원문을 연구하고 비평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텍스트를 의미한다.

(히브리어 성경 사본 목록을 보려면 영문 위키피디아 링크를 참고할 것.)

루돌프 키텔(Rudolf Kittel)은 독일의 구약학자로, 1901년에 최초로 히브리어 성서의 비평 편집본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비블리아 헤브라이카(Biblia Hebraica, BH 또는 BHK, 1906년~)는 제3판까지 미크라옷 그돌롯(Mikraot Gedolot), 레닌그라드 사본의 마소라 본문을 사용했다.

성경 정경

특히, 정경(正經)이란 라틴어 canon을 번역한 어휘이다. 위키피디아1)

기독교의 정경이 정해진 이유와 그 과정

  1. 사도행전 1장 1절 말씀과 같이, 예수께서는 행하시며 가르치셨는데(... Jesus began to do and to teach), 예수의 승천 이후에도 사도들이 이를 올바르게 가르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사망후 초대교회에서 본격적인 이단들의 출현으로 기독교의 기준이 필요하게 된다. (2c)
  2. 로마 가톨릭 교회는 유대교의 구약성경 39권과 외경들, 그리고 신약성경 27권을 인정한다. (카르타고 공의회, 419년)
  3. 종교개혁자들은 상기 목록에서 외경을 제외한, 66권만을 정경으로 인정한다. (16c)

다양한 기독교의 정경

(구약성경의 외경들에 대해서 각 교파에 따라 정경으로 인정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려면 상기 위키피디아1) 링크를 참고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