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여기서는 기독교, 특히 개신교의 성경에 대해서 다룬다.
성경 기록과 번역의 역사
성경의 원문은 소실되어 없으며, 원문에 가깝다 여겨지는 여러 판본(필사본)들이 존재한다. 구약성경의 여러 판본들 가운데 시대별로 신뢰성이 높다 여겨지는 판본을 번역하거나 번역본을 다른 언어로 재번역하는 등의 절차로 생겨났다. 구약성서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사본의 종류는 사해문서인데 이는 1947년에 발견된 이후 약 250개 이상의 사본이 있는 반면, 신약성서는 헬라어 사본 약 5,800개 이상, 라틴어 사본 약 10,000개 이상, 시리아어, 아르메니아어, 에티오피아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사본들이 있으며, 이는 고대 문서 중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편에 속한다. (흔히 자주 비교되는, 고대 그리스 문학 일리아드(Iliad)의 사본은 약 1,800개 이상 존재하나, 대부분 중세에 필사된 것으로 실제로 고대에 작성된 사본은 몇십 개 정도로 추정된다.)
(성경 사본에 대한 위키피디아의 링크를 참고할 수 있다.)
(특히, 신약성서 사본에 대해서는 아래, 신약성경의 가장 오래된 사본 ... 문단을 참고할 것. 한편 구약성경의 가장 오래된 사본은 케테프 힌놈Ketef Hinnom에서 발견된 KH1, KH2 두루마리(BC 7c 후반, 민수기 6장 24-26절)이다.[a])
70인역(칠십인역, Septuagint, LXX)
기원전 300년경, 히브리인의 경전을 코이네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집트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의 명으로, 이스라엘 12지파에서 각각 6명씩 72명의 유대인 번역자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했다는 설이 있다(위서, 아리스테아스 서신). 1세기 경의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저서, 유대 고대사에서 70인의 장로들과 2명의 사자가 알렉산드리아에 파견되었다는 기술이 남아있다.
- 알렉산더 대왕이라 불리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3세의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헬라어는 공용어로 사용되었다.
- 기원전 1세기 이후 로마제국의 지배시기에도 헬라어의 영향이 강력했으며,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아람어가 사용되며 히브리어를 읽지 못하고 헬라어에 익숙한 유대인들이 많았다. 로마제국 각지에 흩어살던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은 헬라어가 모어가 된다.
- 때문에, 초대교회에서 바울을 포함한 사도들이 인용한 구약성경은 70인역이었다.
- 라틴어 불가타 번역의 기초가 된다.
- 그러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마소라 본문만을 인정했기 때문에 현대 개신교의 많은 종파에서는 70인역에만 포함되는 외경은 성경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본다.
(70인역의 가장 오래된 사본인 파피루스 458은 기원전 2세기 중반으로 추정되며 사해 두루마리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그리스어 성경의 가장 오래된 사본이었다. 이는 가장 오래된 신약성경 사본인 파피루스 52와 함께 영국 맨체스터 존 라이랜즈 대학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다.
(70인역 전체가 포함되어 있는 사본은 시나이 사본과 바티칸 사본으로 4대 언셜사본..을 참고할 것)
(70인역(LXX)은 독일성서공회 웹사이트와 Blue Letter Bible에서 성경본문을 볼 수 있다. 참고자료-온라인 성경을 참고할 것)
불가타(Vulgata)
새 라틴어 성경으로 헬라어 원문 성경을 5세기 초에 라틴어로 번역한 역본이다. 이는 원문에 매우 충실하고 정확한 번역일 뿐만 아니라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라틴어로 되어 있었으므로 5세기 이후 서방교회 사회에 널리 보급되었다. 현재에도 천주교회의 정본이다. 개신교의 종교개혁 이후 루터의 독일어 성경 번역을 시작으로 다양한 국가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포된 것은 제37대 교황 다마소 1세가 재임하던(380년) 중이었다. 그리고 그의 교회 개혁에 따라 라틴어가 서방교회 지역의 중심적 전례 언어가 되었다.
- 당시에는 성경의 라틴어 번역본이 여러 역자가 번역하여 용어와 구성에 통일성이 없이 난잡하고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라틴어 지역에서 가톨릭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통일성 있는 새로운 공용 라틴어 성경 번역본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 그는 자신의 비서로 임명한 히에로니무스(제롬Jerome)에게 헬라어 신약성경과 70인역 구약성경을 정확히 라틴어로 번역하라고 요청했다. 그는 부정확한 옛 라틴어 번역본(Vetus Latina, 영 Old latin)에서 벗어나 당시 대중이 널리 사용하는 대중 라틴어로 정확하게 번역하도록 강조하였다. (382년)
- 성 히에로니무스는 (이때부터 406년까지) 신약성경을 헬라어에서 라틴어로 직접 번역하였고, 구약성경의 경우에는 헬라어로 쓰인 70인역에서 번역하였다가 3차번역에서 히브리어 원문에서 라틴어로 직접 번역했다. 이 성경 번역본은 가톨릭 교회의 공의회를 통해 공식적인 라틴어 성경으로 인준을 받았다.
(베투스 라티나는 2세기부터 특정한 개인이 아닌,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신자들이 원문을 바탕으로 고전 라틴어Late Latin로 번역된 성경의 여러 판본을 지칭하는 용어로, 이에 대한 소개와 사본의 일부 이미지는 여기 링크에서 볼 수 있다. 영국 버밍엄 대학교 텍스트 학술 및 전자 편집 연구소 제공)
(불가타의 사본은 코덱스 아미아티누스(서기 8세기), 코덱스 상갈렌시스63(서기 9세기)이 각각 이탈리아 피렌체 로렌티안 도서관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 도서관인 스위스 장크트갈렌 수도원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기술발전으로 세계 디지털 도서관 웹사이트에서 본문 이미지를 볼 수 있다. Codex Amiatinus; 2,059페이지, 495MB)
(불가타(VUL)은 독일성서공회 웹사이트와 Bible Gateway, 그리고 Blue Letter Bible에서 성경본문을 볼 수 있다. 참고자료-온라인 성경을 참고할 것)
마소라 본문(Masoretic Text, MT)
유대교의 권위있는 24권의 타나크, 즉 히브리어(일부 아람어)로 된 본문(판본)이다. 중세 7~10세기 사이에 복사 및 편집, 배포되었다.
타나크 24권: 율법서(토라, 5권), 예언서(8권, 네비임), 성문서(8권, 케투빔), 기타/사서(3권)
(기독교와 달리 상/하권으로 나누지 않고 한권으로 본다. 자세한 목록은 타나크 위키피디아 링크를 참고하라.)
마소라 본문이 중요한 이유는, 마소라테스(Masoretes)라 불리는 마소라 학자들이 히브리 성경 본문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수정하여 오류를 최소화하여 정확하게 하여 히브리 성경이 오랜 세월 동안 보존하고 전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마소라 본문의 가장 오래된 사본 중의 하나인 레닌그라드 사본(1008년)은 비블리아 헤브라이카(BH),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슈투트가르텐시아(BHS)의 히브리어 본문으로 복제되었다.
(레닌그라드 사본은 러시아 국립도서관(상트페테르부르크)에 보관되어 있다.)
(레닌그라드 사본보다 수십년 정도 더 오래된 완전본으로 일컬어졌던 알레포 사본이 있으나, 1947년 반유대주의 폭동 이후 사본의 일부가 분실되었다)
(마소라 본문의 웨스트민스터 레닌그라드 코덱스는 Bible Gateway와 Bible Hub, 그리고 Blue Letter Bible에서, BHS는 독일성서공회 웹사이트에서 성경본문을 볼 수 있다. 참고자료-온라인 성경을 참고할 것)
존 위클리프와 월리엄 틴들
영국의 기독교 신학자이자 종교개혁자인,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의 가장 큰 업적은 라틴어로 쓰여져 있던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약 13년간, 1382~1395). 라틴어가 이미 고어가 되었음에도, 14세기에는 교황의 명령에 따라 성경 번역이 서방교회 법률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 소수의 사제들만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신도 대중들이 성경을 알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정보 제한 역할을 하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제롬의 불가타 성경은 당시 대중들이 알지 못했던 옛 라틴어 성경을 대중 라틴어로 정확하게 번역한 것이었다.
월리엄 틴들(William Tyndale)은 위클리프에게 영향을 받아 헬라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다. (1525년) 흠정역(KJV) 영어판의 70%가 이에 근거한다.
(위클리프 성경Wycliffe Bible(WYC)은 biblegateway.com(2001년판)과 studylight.org(1395년판)에서, 또한 (틴데일 성경Tyndale Bible(TYN)은 studylight.org(1525년판)에서 성경본문을 볼 수 있다. 참고자료-온라인 성경을 참고할 것)
구텐베르크 성경(독: Gutenberg-Bibel)과 독일어 성경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인쇄술로 최초로 대량으로 인쇄된 성경으로, 본문은 라틴어 불가타 성경이다. (1455년)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독일어 성경 번역은 1522년에 시작되어 1534년에 완성되었다. 루터는 불가타 뿐만 아니라 히브리어 구약성경, 헬라어 신약성경을 직접 번역하였다. 루터의 독일어 성경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덕분에 빠르게 보급되면서 독일의 기독교인들은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1462년 구텐베르크 성경 라틴어 불가타는 비영리 디지털 도서관 사이트인 여기 링크에서 볼 수 있다.)
(루터성경Luther Bibel(LUTH1545)는 Bible Gateway에서, 최신 개정인 2017년판(LU17)은 독일성서공회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참고자료-온라인 성경을 참고할 것)
제네바 성경
제네바 성경(Geneva Bible)은 킹 제임스 성경보다 51년 앞선 영어 성경으로(1560년), 역사적으로 중요한 번역본 중 하나이다. 영국 여왕 메리 1세의 공포정치로 영국의 비국교도들은 스위스 제네바 독립시로 망명하였다. 제네바 성경은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망명한 개신교도들에 의해 번역된 성경이다. (본문은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이다.)이는 16세기 영국 개신교도들의 주요 성서였으며 윌리엄 셰익스피어, 올리버 크롬웰, 존 녹스, 존 던, 그리고 《천로역정》(1678년)의 저자 존 번연이 사용하였다. 메이플라워호를 통해 미국으로 전해진 성경 중 하나이기도 했다.
(제네바 성경(GNV) 1599년판과 개정된 제네바 번역(RGT)(2019년판, 신약)은 Bible Gateway와 TRBible.com에서 볼 수 있다. 참고자료-온라인 성경을 참고할 것)
(셰익스피어가 가장 좋아했던 성경 번역본에서 기반한, RGT에 대한 출판사의 소개는 이 링크에서 볼 수 있다.)
(제네바 성경은 이미 퍼블릭 도메인이고, 비영리 디지털 도서관 사이트인 여기 링크에서 원문을 볼 수 있다. 잘 찾아보면 다운로드도 가능하다. 1560년 초판, 259MB, 1224페이지)
(여기 링크에서 제네바 성경의 각주를 볼 수 있다. 존 칼빈, 존 녹스, 마일스 커버데일 등의 주석, reformedreader.org 제공)
흠정역(KJV)
킹 제임스 성경(The King James Version, KJV 또는 KJB)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그리고 아일랜드 왕국의 국왕 제임스 1세의 명으로 1604년에 번역을 시작하여 1611년에 끝마친 기독교 성경의 영어 번역본이다. 틴들의 성경과 제네바 성경에 영향을 받았다.
"위엄 있는 스타일"로 유명한 킹 제임스 성경은 영국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책 중 하나이다. 여전히 많은 개신교 기독교도들이 선호하는 번역본이며,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유일하게 유효한 번역본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고전적인 영어로 작성되어 있어 문학적 가치가 높고, 여러 문서와 작품에 인용되는 경우가 많으며 많은 성경 구절이 유명한 인용구로 자리 잡을 정도로 영어권 문화와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킹제임스 전용주의-King James Onlyism에 대해서는 위키피디아의 링크를 참고할 것, 본 위키의 편집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본문은 구약성서는 히브리어의 마소라 본문과 아람어에서, 신약성경은 대부분 16세기에 에라스무스가 편집한 헬라어(TR본문)에서, 그리고 외경은 헬라어(70인역)와 라틴어(불가타)에서 번역되었다. (초기에는 외경이 부록 형태로 포함되어 있었으나 1629년 이후 외경은 삭제된다.)
(kingjamesbibleonline.org에는 1611년 원본 텍스트의 온라인 검색 가능한 데이터베이스를 볼 수 있다.)
(흠정역은 이미 퍼블릭 도메인이고 기술 발전으로 인하여 아래 각주[1]에서 원본의 스캔본을 볼 수 있다.)
사해사본(死海寫本)
사해문서(Dead Sea Scrolls), 두루마리, 또는 쿰란 문서라고도 한다. 1947년에서 1956년경까지 10년에 걸쳐 서해 서쪽에 있는 쿰란 주변과 동굴들에서 발견되었다. 이들의 연대는 기원전 2세기로 여기서 발견된 히브리 성서는 현존하는 구약 사본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사본 중 하나이다. 히브리어와 그 방언, 일부 아람어와 코이네 그리스어(헬라어의 후계자)로 기록되었다. [2]
사해사본이 발견되기 전에는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성경은 마소라 본문(약 9c)이었다-사해사본은 그 날짜를 무려 천 년 앞당겨 기원전 2세기로 끌어올린다. 이것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성스러운 텍스트가 100년경의 얌니아 회의의 개혁 또는 이후 수백년의 필사과정에서 수정되거나 훼손되었을지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다.
성서의 텍스트(text)는 조금도 훼손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해 문서의 발견은 이것을 결정적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Christopher de hamel(2001), The book: A history of the Bible. (이종인 역, 미메시스 출판사) 328~329p
(발굴과정과 기원에 대한 여러 견해, 그리고 고고학적 관점에 대해서는 영문 위키피디아 링크를 참고할 것).
현재 대부분의 문서는 예루살렘의 지혜의 신전 도서관(Shrine of the Book)에 보관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구글과의 협약으로 사해문서 중 대이사야서, (빛의 자손과 어둠의 자손의 접전에 관한) '전쟁 두루마리', '하박국서 주석', '성전 두루마리', '공동체규범' 등의 5개 두루마리를 디지털화하여 웹사이트(dss.collections.imj.org.il/)에 올려놓았다[b] 이중 이사야서에 한하여 영문번역이 제공된다.
신약성경의 가장 오래된 사본, '파피루스 52' (P52)과 4대 언셜(또는 대문자체) 사본
이집트의 파흐라 (Fayum) 지역에서 발견된 것으로, 가장 오래된 신약 성경 본문으로 알려진 것이다. 이 문서는 요한복음의 일부(18:1~33, 37~38)로, 2세기 초(주후 125~175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용 카드 크기 정도에 그리스어로 양면(렉토recto는 오른쪽 페이지의 왼쪽 상단모서리, 베르소verso는 왼쪽페이지의 오른쪽 상단모서리)에 쓰여져 있으며 현재 영국 맨체스터 존 라이랜즈 대학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다.
또한, 신약 성경의 전체적인 사본(언셜uncial codices, 코이네 그리스어로 된 원래 구약과 신약 전체를 담고 있던 사본) 중에서는 '시나이 사본' (Codex Sinaiticus)과 '바티칸 사본' (Codex Vaticanus)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들은 4세기경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각 바티칸도서관과 영국국립도서관 등에 대부분 보관되어 있다. 이외에도 안렉산드리아 사본(런던, 영국국립도서관 보관), 에브라임 사본(파리, 프랑스국립도서관 보관)이 있다. (각 5세기경)
(파피루스 52에 기록된 요한복음 일부의 내용을 상기 위키피디아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파피루스 52의 사진은 비영리 디지털 도서관 사이트인, https://archive.org/details/papyrus52/에서 볼 수 있다)
(시나이, 바티칸 사본 등 4대 언셜 사본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상기 위키피디아 링크를 참고할 것.)
최초의 한글 성경과 초기 번역 (존 로스, 이수정의 마가복음)
존 로스(John Ross)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장로교 선교사이며 중국에서 선교활동 중 최초로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한 사람이다. 1887년 만주에서 백홍준 등의 도움을 받아 신약전서(예수셩교전서)를 출판하였다-한문 성경을 번역하고 그리스어, 영어성경과 대조하여 수정하였다.
(그의 선교활동과 번역과정은 상기 위키피디아 링크를 참고할 것.)
연세대학교에 인쇄본이 남아있으며 국가등록문화재 제669호로 지정되었다.[3]
이수정(李樹廷)은 조선 말의 개신교 신자이자 성서번역가이다.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를 무사히 피신시키고 일본 체류 중 개종했다. 마가복음을 한글로 번역하였고(신약마가전복음서언해, 1885년), 당시 일본에 체류중이었던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이로써 미국에서 일본을 통해 한국에 입국하는 선교사들은 이수정의 한국어 번역본 성경을 가지고 선교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의 생애와 활동에 대해서는 상기 위키피디아 링크와 네이버 지식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 링크를 참고할 것.)
BHS, 네슬레-알란드판
(각각 히브리어 구약성서, 그리스어 신약성서의 비평본문)
이 문단에서는 성서학자들이 말하는 '비평 본문(批評本, critical edition)'에 대해 다룬다. 이는 성경의 원문을 연구하고 비평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텍스트를 의미한다.
(히브리어 성경 사본 목록을 보려면 영문 위키피디아 링크를 참고할 것.)
루돌프 키텔(Rudolf Kittel)은 독일의 구약학자로, 1901년에 최초로 히브리어 성서의 비평 편집본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비블리아 헤브라이카(Biblia Hebraica, BH 또는 BHK, 1906년~)는 제3판까지 미크라옷 그돌롯(Mikraot Gedolot), 레닌그라드 사본의 마소라 본문을 사용했다.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슈튜트가르텐시아(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BHS)는 상기 비블리아 헤브라이카의 제4판에 해당하며, 레닌그라드 사본의 마소라 본문과 그 비평 주석이 부록으로 추가된 히브리어 성경이다. 이 성경본은 히브리어 성경 중 정확도가 높은 판으로, 비평 본문의 참조가 편리한 이유로 유대교인 및 기독교인에게 널리 받아들여졌다. (현재 개역개정판도 이를 원문으로 하고 있다.)
(현재 독일성서공회(Deutsche Bibelgesellschaft) 웹사이트에서 성경본문을 볼 수 있다.)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퀸타(Biblia Hebraica Quinta, BHQ)는 상기 BH의 제5판이며, BHS의 후계판이다. 상기와 마찬가지로 레닌그라드 사본을 저본으로 한다. 쿰란 사본을 통해 최근에 발견된 자료들과의 비교 및 참조 내용들이 보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책은 분책으로, 2004년에 제1권이 출간되어 최근 제9권(2024년)이 출판되었으며 2032년에 총 20권으로 완간하는 것으로 진행되고 있다.
노붐 테스타멘툼 그라이케(Novum Testamentum Graece)는 신약성서의 원본판인 그리스어로 된 비평본으로, 대부분의 현대 성경 번역과 성서 비평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 가장 영향력 있는 편집자인 에버하르트 네슬레(Eberhard Nestle)와 커트 알란드(Kurt Aland)의 이름을 따서 네슬레-알란드판으로도 알려져 있다. 2024년 현재, 최신판은 독일성서협회에서 출판하는 28판(NA28)이다. (세계성서공회연합회의 UBS5-United Bible Societies와는 같은 이름이다. 각기 다른 연구 목적과 독자층에 맞추어 제작되었다.)
(현재 독일성서공회(Deutsche Bibelgesellschaft) 웹사이트에서 성경본문을 볼 수 있다.)
(출판역사와 원고의 정확성에 대해서 더 알아보려면 영문 위키피디아의 링크를 참고할 것.)
(네슬레 이전에는, 비잔틴 계열의 표준원문 또는 수용원문(TR사본, Textus Receptus)을 사용하였다가(17~19세기), 더 오래된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웨스트콧-홀트 헬라어 성경(WH 또는 WHNU)을 원문으로 사용했다-1881년 출판. 아래 각주[4]에서 성경본문을 볼 수 있다.)
성경 정경
특히, 정경(正經)이란 라틴어 canon을 번역한 어휘이다. 위키피디아1)
기독교의 정경이 정해진 이유와 그 과정
- 사도행전 1장 1절 말씀과 같이, 예수께서는 행하시며 가르치셨는데(... Jesus began to do and to teach), 예수의 승천 이후에도 사도들이 이를 올바르게 가르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사망후 초대교회에서 본격적인 이단들의 출현으로 기독교의 기준이 필요하게 된다. (2c)
- 로마 가톨릭 교회는 유대교의 구약성경 39권과 외경들[5], 그리고 신약성경 27권을 인정한다. (카르타고 공의회, 397년)
- 종교개혁자들은 상기 목록에서 외경을 제외한, 66권만을 정경으로 인정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 1조 2항, 1647년)
다양한 기독교의 정경
(구약성경의 외경들에 대해서 각 교파에 따라 정경으로 인정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려면 상기 위키피디아1) 링크를 참고할 것.)
각주
[a]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구약성서 사본은 본문에 언급된 KH1, KH2(BC 7c 후반)이며, 완전한 형태의 히브리어 성경 사본은 1008년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레닌그라드 사본이다(마소라 본문 참조). 참고로 1947년 사해 두루마리(BC 2c)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내쉬 파피루스Nash Papyrus(BC 2c)가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사본이었다.
[1] 흠정역(KJV) 원본의 온라인 스캔본을 볼 수 있는 웹사이트 (잘 찾아보면 다운로드도 가능하다)
(이 링크와 이 링크에는 1611년에 출판된 흠정역 원본을 스캔본을 볼 수 있다. 총 1,506페이지, 1.8GB, 펜실베니아 대학도서관 보관)
(이 링크에는 1611년에 출판된 흠정역을 옥스포드 대학출판부에서 1833년에 정확히 재인쇄한 전체 책을 볼 수 있다. 총 1,479페이지, 107MB, 일리노이 대학 보관)
(이 링크에는 캠브리지 대학출판부에서 1873년 출판한 문단성경을 볼 수 있다. 초기판과 다른 주요 판본의 대조를 통해 본문을 개정하고, 이탤릭체를 통일하고, 여백 참조를 재구성하고, 중요한 서론을 접두사로 붙였다. 총 1,442페이지, 126MB, 프린스턴 신학대학 도서관 보관)
(LibriVox에는 책별로 오디오북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
[2] 사해사본은 주로 에세네파가 기록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들은 제2성전기에 사두개파, 바리새파와 함께 형성된 유대교 종파이다.
[b] 교회와신앙(https://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901)
[3] 디지털동작문화대전
[4] TR본문의 디지털 텍스트와 WH성경의 온라인 스캔본을 볼 수 있는 웹사이트
(textusreceptusbibles.com Library에는 TR본문의 헬라어 판본과 영문판 본문 등을 볼 수 있다. Robert Estienne(Stephanus)의 1550년판, Theodore Beza의 1598년판 등)
(이 링크(a)와 이 링크(b)에서 각각 웨스트콧-홀트 헬라어 성경의 본문을 볼 수 있다. (a)1882년판; 그리스어-영문대역, 총 801페이지, 57MB, 캘리포니아 대학도서관 보관 (b)1925년판, 총 618페이지, 66MB, 유니버셜 디지털 라이브러리)
(이 밖에도 참고자료-온라인 성경 부분을 참고하면 더 많은 역본 등을 볼 수 있다)
[5] 토빗기, 유딧기, 지혜서, 집회서, 마카베오 상/하, 바룩서(총 7권) 이중 바룩서를 예레미야서에 포함시키면 6권으로, 총 72권이 되지만 일반적으로 이를 따로 떼어 73권이라고 한다. (가톨릭신문 참조)
외경을 정경으로 보는 것과 그렇지 않음을 비교해보자면; 유대교는 주후 90년, 얌니아 회의에서 히브리어로 작성된 것만이 참된 성경으로 보았다(팔레스틴 정경Palestinian Canon). 이를 후대 루터를 비롯한 프로테스탄트들도 받아들였다. 반면, 가톨릭은 히브리어가 아닌 그리스어로 작성되었지만 하나님의 영감으로 작성된 것으로 인정하는 점이 다르다. 이는 1. 초대교회에서 외경이 포함된 70인역을 사용함(알렉산드리아 정경 Alexandrian Canon). 2. 제롬이 불가타를 번역하면서 이를 번역대본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서울주보 교리톡톡 신앙쑥쑥(2020. 08. 23.)
(다만, 외경-제2경전의 일부는 1947년 사해 인근 쿰란동굴에서 히브리어 사본이 발견된다. 가톨릭신문 2024. 11. 20과 가톨릭교리상식 2021. 8.8 참조)
정경으로 보지 않는 근거는; 1. 유대인들조차 정경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보았다. (90년 얌니아 회의) (유대인들은 외경이 집필된 시기에 선지자들의 음성이 없었다고 믿고 있었다. 유대인들에게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성경 계시는 말라기서를 끝으로 일단락되었다고 믿고 있다) 2. 예수와 사도들, 초대교회의 교부들은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의 구절들에서 인용한 구절들이 많이 있지만, 그러나 외경으로부터는 결코 인용하지 않았다. 간혹 성경의 기자들이 우연히 다른 책들을 참조했었지만, 그렇다고 그 책들이 정경의 목록에 포함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유다서 14-15절은 ‘에녹서’를 참조했는데, 에녹서는 로마 가톨릭의 제2경전에 포함되지 않는다.) 3. 그 내용이 정경과 일치하지 않는다. 4. 카톨릭의 트렌트 공회의 결정(카르타고 공의회의 성경목록 재확인)은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한 반작용이다. 5. (구약성경의 예언서들과 달리, 어떤 외경들도 결코 신적 권위를 주장하지 않고 있다.) 외경 어디에도 “여호와께서” 또는 “주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느니라”는 표현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성경으로서의 영감과 권위는 부여할 수 없다. (참조: 강진선, 간추린 성경 개론, 생명의 말씀사. 2000) (한국창조과학회, 외경이란 무엇인가? 참조)
덧붙여; 유대교의 얌니야 회의에서 정경을 선택한 기준은, 1) 이 책이 여호와 유일신 신앙을 가르치고 있는가? 2) 이 책이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권위 있는 책으로 인정을 받아 왔는가? 3) 이 책이 권위 있는 저자의 직, 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쓰여졌는가? 4) 이 책 안에 신적인 권위를 입증하는 증거가 있는가? (기독일보 2017. 10. 18 참조)
초기의 영어 성경에서 외경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확인하려면, 창조과학선교회의 외경과 우리의 성경 단락을 참조할 것.
가톨릭은 외경(Apocryph)을 제2경전(Deuterocanon)이라 하는데 두번째 등급에 해당하는 경전이라는 뜻이 아니고 또하나의 정경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며 동일한 정경의 지위로 인정하는 반면, 개신교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7년, 1조3항)를 통해, 일반적으로 ‘외경(外經)’이라고 불리는 책들은 1) 신적 영감으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경의 정경의 일부가 아니며 2)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에서 아무 권위가 없고 3) 또한 다른 인간적인 저작물보다 더 나을 것이 없으며 4) 사용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눅24:27,44; 롬3:2, 벧후1:21)라고 본다.